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소득과 부가 가장 불균형한 곳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먼저 소득 불평등 문제를 먼저 살펴보자. 2014년 세전 소득을 기준으로 미국 상위 1%의 고소득자들은 전체 소득의 약 20%를 번다(Piketty, 2016).
이중 상위 0.1%의 사람들의 소득만 전체의 10%에 이른다. 상위 10%까지 범위를 넓히면, 이들 10%의 소득이 전 국민 소득의 절반을 차지한다. 세금을 납부한 후의 소득을 감안해도 이 범주 사람들의 소득의 합은 전체의 40%에 달한다. 이러한 고소득자들의 수입에서는 자본 소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상위 1%의 소득자들은 소득 중 절반이 넘는 금액을 예금이나 채권의 이자, 부동산 임대료, 주식의 배당금 등의 자본 이익으로 벌어들이고, 상위 0.1%에서는 이 비율이 70%에 가깝다. 그러나 소득 하위 90%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고 자본 소득은 10% 정도 밖에 거두지 못한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불평등의 정도를 하나의 숫자로 표현하는 지니계수는 복합적인 요소까지 고려하지는 못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서 널리 쓰이는 소득 불균형 관련 지표이다. 이 계수는 0~1 사이의 숫자로 표현되는데 1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은행의 자료를 기준으로 2016년 미국의 지니계수는 0.42로서 선진국들 중에서 상위에 속한다. 이 숫자는 평등 수준이 높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의 0.27~0.29 및 우리나라는 0.32 정도에 비해 매우 크다.
소득 5분위 배율(Quintile factor)이라는 척도를 보아도 미국의 불평등 수준은 드러난다. 5분위 배율은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소득 비율로서 지니계수와 마찬가지로 숫자가 높을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함을 나타낸다. OECD 기준 2017년 미국의 소득 5분위 배율은 8.4에 달한다. 이는 북유럽 국가들의 3~4 수준 보다 훨씬 높은 것은 물론이고 5 내외인 우리나라보다도 크게 높은 수치이다.
소득 불평등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각자가 이미 누리고 있는 부의 불평등이다. 소득의 경우 상위 1%가 전체의 20%가량을 벌어들이지만, 연방준비은행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이미 소유하고 있는 부의 경우 상위 1%가 전체의 30% 정도를 가지고 있다
상위 10%의 부는 무려 전체의 70%에 이르고, 하위 50%는 고작 전체 부의 1% 정도만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최고 부자 400명의 재산이 이들 절반 인구의 부보다 더 많을 정도이다. (CNBC, 2013) 부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8 정도로 소득 불평등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Davies, 2009), 5위 배율은 하위 20%의 부채가 자산보다 많기 때문에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불평등 자체와 함께 당면한 큰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소득, 부의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은 전후 호황이 이어지던 1950~1960년대에는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1970년대부터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고, 그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2011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큰 파국을 일으킨 이후에도 계속되는 월가의 탐욕에 대한 저항으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모토의 시위가 일어나 불만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과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나라의 활력을 높여왔다. 하지만 점점 심화되는 소득과 부의 불균형은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부가 고착화되면서 과거 귀족사회처럼 부자가 사회계층의 최상위에 올라가고 부가 가치 판단의 최대 척도가 되어 버리는 현상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Almighty dollar)되고, 반대로 돈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직업윤리, 명예, 자긍심 등 그동안 인류가 소중히 여겼던 가치들도 돈에 비하면 하찮고 우스운 것들이 되어 점점 힘을 잃어간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Winner-take-all), 과도한 소비주의(Hyper consumerism)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와 대의정치마저도 돈과 금권이 좌지우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게재 21.11월)
과거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인들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총은 서부 개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오늘날 미국의 총기 문제 또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처럼 복합적인 원인을 갖고 있지만, 프런티어에서의 광범위한 총기 사용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현재 미국 내에 얼마나 많은 총기가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에는 약 4억정의 총(Small Arms Survey, 2017)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거의 인구 한 명당 1.2개의 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보통 총은 한 사람이 몇 정씩 보유하는 일도 흔하기 때문에 총을 가진 사람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4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의 32%가 총을 가지고 있고, 인구 대비 22%가 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Smith, 2014). 조사에 따라서 총기 소지 가구 비율은 전체의 절반까지 이르는 경우도 많다(CRIME PREVENTION RESEARCH CENTER, 2018).
프런티어 문화에서 총은 남을 위협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방패가 되기도 했다. 공권력이 미처 갖춰지지 않았던 불모지에서 무법자,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보호막은 바로 총이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온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조차도 자신들을 공격하는 야만인이라고 생각했고, 이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에 따라 총은 초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필수품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에 일반 민병(Militia)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던 총을 들고 전쟁에 참가할 정도로 개인 화기는 널리 보급돼 있었다. 이런 역사적 환경 속에서 ‘민병을 구성하고 총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는 1791년 수정헌법 제2조(자유로운 주의 안전에 필요한 잘 규율된 민병,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로도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총기를 휴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군대가 있고, 지역마다 경찰들이 활동하는 오늘날에는 개인의 총기 휴대 필요성이 낮을 것 같지만 총을 둘러싼 논의는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총기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이제 그만 총기 소유를 금지하자는 목소리는 특히 높아진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총의 문화가 너무 뿌리 깊게 박혀있고 이미 너무 많은 총들이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총기사고로 해마다 1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3명 정도로 총기 사고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전체 살인율 0.6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총기 자살까지 합치면 일 년에 거의 4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총으로 죽고 있는데, 이는 자그마치 인구 10만 명당 12명에 이르는 숫자이다. 매년 미국인 만 명 중의 한명은 총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일 년에도 몇 번씩 발생하는 집단 총기 난사는 총기 살인의 가장 끔찍한 형태로 2007~2018년간 한해 평균 5.4건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렇게 죽는 사람들이 전체 총기 사망 숫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총기 난사는 숫자를 뛰어 넘는 공포감을 주게 마련이다. 누구나 이러한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어디에서나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시기를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에는 사회적인 파장이 엄청나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 규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총기 보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매년 반복적으로 죽어가는 무고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미국 사회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안전은 군대와 경찰에게 맞기고 일반 사람들이 보유한 총기는 단계적으로 수거해서 폐기해야 한다는 제안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총기 보유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총은 여전히 자신을 보호하는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이미 총을 가지고 있는 이상 선량한 사람들도 자기 방어를 위해서 총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총기를 수거한다고 해도 범죄자들은 총기를 반납하지 않을 것이고, 혹 반납한다 해도 밀매와 불법제조를 통해서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상황도 중요한 고려요소로 제기된다. 공권력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처럼 면적이 넓고 국경이 긴 나라에서는 군인과 경찰이 모든 것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방어를 위한 총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총기 문제는 총기 소유자, 제조업자, 찬반론자들의 입장이 얽히고설켜 있고,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 문제까지 더해져 쉽게 풀 수 없는 고차 방정식이 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안타깝게도 매년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건이 되풀이됨에 따라 희생을 당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점점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에 둔감해지고 문제 해결에 무관심해져 간다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게재 21.11월)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마약이다. 마약에 의한 병폐도 불평등, 총기와 마찬가지로 단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 요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인들은 사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아편(Opium)을 진통제 성분으로 널리 이용했다. 이 또한 결정적인 요인까지는 아니어도 일정 부분 프런티어의 고립된 환경과 관련이 있었다.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외진 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스스로 양귀비를 재배해서 얻은 아편으로 여러 질병의 고통을 견뎠다. 아편은 전쟁 시에 더 많이 이용됐다. 특히 남북전쟁 때에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편과 몰핀이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편은 18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통제로 인식됐다. 아편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19세기 말 의학 지식이 발달하면서부터였다. 이 문제는 워낙 심각해 20세기 초에는 마약류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강력한 통제도 다양한 신성분의 마약이 계속 등장하고 암거래가 활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또한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반군들이 수익원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던 마약이 광범위하게 밀반입되면서 미국 내 마약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2017년 기준 미국 내에서 마약 등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1년 무려 7만 명에 이른다(National Institute of Drug Abuse, 2017). 이는 인구 10만 명 당 22명 수준으로 교통사고 사망률(12명), 범죄에 의한 살인율(5명) 등 다른 모든 수치들을 크게 뛰어넘는다.
미국 당국은 1970년대부터 강력한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을 펼치고 있지만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 오히려 감옥의 수감자와 재판 건수만 점점 늘어나게 했을 뿐이다. 1970년대 25만 명 수준이던 미국 감옥의 수감자는 마약사범의 증가로 2013년 22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National Institute of Corrections, 2015).
인구의 0.7%(10만 명당 700명)를 넘는 수감률은 모든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서,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의 5%이지만 세계 수감자의 25%가 미국에 있다는 통계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총과 마약은 미국 내에서 갱(Gang)들이 더욱 활개 치는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2011년 기준 미국에는 약 33,000개의 갱단이 존재하며, 전국에서 모두 140만 명이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고 추정된다(U.S. National Gang Intelligence Center, 2011). 갱단은 마약, 총기 밀매, 도박, 인신매매 등의 범죄를 서슴지 않는데 미국 내 전체 범죄의 절반가량이 갱과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로 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폐해는 막대하다. 이런 갱단은 늘어나는 마약 시장에 편승해 1940년대부터 급속히 성장했는데, 대규모로 총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진압에 어려움이 많아 곳곳에서 그 세력을 떨치고 있다. (게재 21.11월)
부의 불평등, 총기, 마약 외에도 미국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미 20조 달러($20trillion)를 크게 돌파한 국가 부채, 한해 7,000억 달러($700billion)에 달하고 조만간 1조 달러($1trillion)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재정 적자, 5,000억 달러($500billion)에 육박하는 무역 적자 등은 그 숫자의 크기만으로도 입을 다물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인 우리나라의 1년 GDP가 1.6조 달러($1.6trillion) 정도이고,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노력해서 수출하는 물품의 총액이 6,000억 달러($600billion)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이 부채와 적자 폭의 엄청난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 통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하여도 이 같은 재정과 무역의 불균형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인 개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높은 부동산 가격과 월세, 감당하기 힘든 의료비와 의료보험료, 비싼 육아비용과 대학 학자금, 자가용이 없으면 가까운 거리도 움직이기 어려운 비효율적인 대중교통체계, 고령화 시대 속 불안한 노후 생활, 절도와 폭력에 대한 일상적인 위험,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게 남아 있는 인종‧민족 간 갈등, 더 빈번해지고 강력해지는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 등 수많은 걱정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아마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의 하나는 과거 개척민들이 탐험과 이주를 떠났던 설렘을 다시 되찾는 일일 것이다. 미래는 반드시 나아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씩 전진하는 미국인들의 장기를 발휘하는 것이다. 어떤 길이 올바른 길인가에 대해서는 제각각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사회의 진지한 논의를 통해 앞이 안 보이는 안개를 헤치고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게재 21.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