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풀무학교는 현실에 기반을 둔 단단함을 잃지 않은 채 밝고 맑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이곳을 만들었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돈의 액수로 단순하게 표현되는 세상의 성공 기준을 버젓이 무시한다.
풀무학교가 학생들 속에서 길러내고자 하는 가치들은 인간 본성의 선한 부분들을 대변한다. 학교는 땀 흘리는 노동,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보는 여행과 탐방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학생들이 학교를 나와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모습에서도 이런 건강함은 살아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같이 어울려 사는 멋진 이웃,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인간, 일류대학보다 자연과 평화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이 배움터가 길러내고 싶어 하는 인간이다. 대다수가 부를 쫓아가고, 좋은 상급 학교 진학을 그 지름길로 여기고, 질책과 남 탓으로 이익을 지키려 하는 이 세상에서 풀무학교가 지켜가고 있는 정신은 독특한 빛을 낸다.
풀무학교는 1958년에 이찬갑(1904~1974)과 주옥로(1919~2001)가 만든 학교이다. 이찬갑 선생은 학교가 지역과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뜻을 이어받아 학교의 졸업생들은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생활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에서 일했다. 풀무생협과 풀무신협은 그러한 정신에 따라 탄생해 지금껏 번성하고 있다. 이들 설립자들의 뒤를 이어 학교를 이끈 홍순명 교장 선생님도 학교는 지역 일꾼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신념을 갖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가 마을이고 마을이 곧 학교임을 강조한 교장은 200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더불어 사는 평민’들을 길러내고자 했다. 혼자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공동체 지향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 그가 추구한 교육적 가치관이었다. 교장은 사람마다 개성이 있는데 어떻게 성적이라는 일괄적인 잣대로 차별을 받느냐고 얘기하며 열매를 따는 사람보다 사회의 뿌리를 바꾸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이런 정신 속에 학교가 있는 홍동마을에는 여전히 졸업생들이 많이 남아 지역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1975년부터는 오리를 이용한 유기농 쌀농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여러 종류의 유기농 식품들을 재배하고 있다. 30년 동안 풀무신협을 이끈 정규채 전무, 풀무학교 전공부의 장길섭 선생, 젊은 협업농장을 이끄는 정민철 대표, 완주에서 협동조합 이장을 이끌었던 임경수 대표 등은 모두 이 학교가 낳아 지역사회에 돌려준 사람들이다.
장길섭 선생은 학생들과 함께 하우스 바닥에서 고추 모종을 파종하기 위해 널판지를 맞잡고 평탄 작업을 하면서 “농부는 이렇게 겸손해야 한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일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땅에 가깝게 몸을 대고 겸손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 이들은 우리 지역을 지키고 그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귀중한 사람들이다. (작성 2020.1.13)
협동조합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한 형태이다. 주식회사처럼 법인이고, 주주격인 조합원들은 부채나 파산에 대해서 유한책임을 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익을 내야 생존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장점은 누구나 쉽게 투자하고 투자를 철회할 수 있는 유연함에서 온다. 주주들은 회사의 주식을 사면 의결권을 행사하고 이익의 배당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자본을 투입해서 주식을 대량으로 확보하면 회사의 경영권도 얻는다. 만약 회사의 미래를 붙투명하게 본다면 주식을 시장에서 팔면 그만이다.
주식회사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고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당장은 수익이 안 나는 연구개발을 하고 사회공헌을 하는 것도 결국은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지속가능한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주식회사는 주주나 종업원의 의사보다 자본 자체의 의지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구성원 다수가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일이라도 다수의 주식을 가진 세력이 선호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이 곧 회사의 경영 방향이 된다.
기업의 한 종류인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구조는 주식회사와 약간 다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는다. 자본이 아니라 사람 수가 영향력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5명 이상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협동조합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그들 조합원들의 역량에 달렸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조합원들은 모두 주인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나를 위해 일한다는 심정으로 일에 매진하여 협동조합을 안착시킬 것이다.
2007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 중이던 2009년 12월, UN 총회에서는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다. 세계 경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상생과 연대의 원리에 입각한 협동조합의 가치를 부각한 것이었다. 모두가 주인이어서 쉽게 해고당할 수 없는 협동조합은 고용의 안전성 측면에서 일반 회사보다 우수하고, 자본의 탐욕을 제어하는 사회통합적 힘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UN의 이슈 제기로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졌고 비로소 협동조합이 국가 경제의 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존재했던 마을기업, 자활기업과 더불어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축이 된 것이었다. 2012년 이전에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3억원 이상의 출자금과 200명 이상의 발기인을 필요로 했지만 이제는 출자금의 제한이 없어졌으며 발기인 5명만 모이면 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다.
법 제정 전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해 온 대표적인 협동조합은 농협, 축협, 수협, 신협 등의 조직이다. 서울우유나 미국의 선키스트 같은 회사도 각각 낙농업자, 과수업자들의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어져 브랜드 신뢰도를 쌓아왔다. 또 일본에서 활발히 퍼진 생활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여러 소비자협동조합 등도 이미 2012년에는 번창하고 있었다.
아무리 협동조합을 만들기가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협동조합도 엄연히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인만큼 치열한 시장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다행히도 협동조합이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있다. 농수축협이나 서울우유 등과 같은 농수산물 생산 분야는 그 대표적 영역이다. 농민들은 따로따로 제품을 파는 것에 비해 협동조합을 만들면 브랜드의 인지도를 더 높일 수 있고, 원재료를 싼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다. 모두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 장사를 하는 것처럼 정성을 쏟는다면 전체 제품의 품질도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다.
반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분야는 여럿의 동의가 필요한 협동조합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행여라도 다른 사람의 노력에 편승해서 편하게 무임승차하며 입만 앞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 협동조합은 이내 와해되어 버릴 수도 있다.
도시가 아닌 지역은 협동조합이 성장하기에 좋은 토양이다. 서로서로 믿을만한 사람인지 훤히 알고, 오래 쌓인 사회적 자본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서비스도 상대적으로 많다. 돌봄 협동조합, 프리랜서 협동조합, 문화 협동조합, 교육 협동조합, 서점 협동조합, 여객선 협동조합, 에너지 협동조합 등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일이 꽤 된다. 이들 회사들의 첫 번째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돈은 단지 회사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의 편의를 증진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저 막연하게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구호만 외쳐서는 안 된다. 지역의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기 전 공동체를 꾸려 무엇인가를 연습해 보고 같이 일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는 경제라기보다는 공동체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성 2020.6.20)
1인 비즈니스는 뚜렷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잘 읽어낼 수만 있으면 1인 비즈니스는 큰 기업들보다 훨씬 민첩하게 시장에 반응할 수 있다. 반대로 이미 대세가 된 거대한 흐름 속에서 1인 비즈니스의 움직임은 아무래도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지역들은 농수산물 가공 1인 비즈니스의 최적지이다. 좋은 품질의 원자재를 현지에서 바로 조달할 수 있고, 중간 유통 단계를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이라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판매 시장을 지역 밖으로 크게 넓힐 수 있다. 농수산물 생산과 가공 과정 자체를 관광 상품화해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역의 이름과 이미지는 성공의 훌륭한 기본 발판이 된다. 그러나 이들 1인 비즈니스들의 경쟁 상대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과 마트이고 그곳에 입점하는 대기업들이다. 관광 분야에 있어서도 이들의 맞상대는 국내, 해외의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공간들과 최신식 휴양지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1인 비즈니스의 경영 전망이 마냥 밝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지역의 1인 비즈니스 기업들은 서로 뭉쳐 안정적인 인지도와 신뢰감, 경쟁력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명의 창업가들이 하나의 법인을 설립한 후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각자의 주력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스스로 재배한 농산물이나 지역에서 직접 확보한 특산품을 활용해 시장 판매용 2차 가공식품을 만든다. 참기름, 들기름, 식혜, 과일즙, 과일잼, 피클, 떡, 빵, 조청, 가정간편식 수산물 세트 등 1인 비즈니스 기업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매우 다양하다.
이들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밑천이 필요하다. 제조와 포장을 위한 초기 설비 투자금도 많이 들고, 안전과 위생 기준을 지키는 데 들어가는 자금도 만만치 않다. 판매망을 구축하고 마케팅‧특허‧회계‧법률‧세무 부분에서 전문적인 자문도 받는 것도 모두 비용과 연결된다. 이를 1인 비즈니스 창업가가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설령 여럿이 모였다 하더라도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의 1인 비즈니스가 창조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들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브랜드를 알리고 제품의 판로를 확보하는 일까지 공공의 조력 분야는 다양하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적절한 전문가를 연결해 주는 것도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한 공공 분야 관계자들이 새로 시작하는 창업가들에게 제공하는 유용한 서비스이다.
가공식품을 판매할 때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가격 경쟁력이다. 예를 들어 참기름, 들기름의 경우 사람들이 익히 이름을 알고 있는 대기업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100ml에 1,000원 남짓이다. 1인 비즈니스 기업의 제품 가격이 이보다 비싸다면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그 만큼 낮아진다.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블루베리즙 중 저렴한 것도 100ml에 1,000원을 약간 넘는다. 이 역시 사람들이 동일 제품을 선택하는 가격 기준이 된다. 대부분의 가공식품에는 이렇듯 구매를 좌지우지 하는 인터넷 최저가가 있다. 식혜는 100ml에 150원 정도, 사과즙은 450원 정도이고, 오이 피클은 100g에 1,300원, 조청은 300원 정도. 굳이 숫자를 외우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을 치면 바로 나오는 수치들이다.
지역의 1인 비즈니스가 언제 어디서나 가격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치열한 유통경쟁에서 가격과 품질은 이미 기본이 되었다. 최저가의 브랜드 제품보다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이 비슷하거나 아주 약간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어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역의 1인 비즈니스는 단지 가격과 품질을 넘어선 특별한 가치를 개발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신뢰이다. 몸에 안 좋은 약품을 쓰지 않고 재배한 우리 농산물을 청결하게 가공하여 바로 판매하는 제품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러한 신뢰가 있다면 다소 비싼 가격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의 선택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향할 것이다. 두 번째는 선함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만든 음식이라는 느낌을 소비자에게 얹어 주는 것이다. 건강하고 선한 욕구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언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지역 1인 비즈니스의 입장에서 이들은 단단한 충성 고객층이 될 수 있다. 마지막은 멋이다. 식품은 신선함과 맛 뿐 아니라 문화와 결부되어 있는 상품이다. 사람들이 프랑스의 와인과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를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것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문화의 멋을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의 생활과는 차별화된 지역만의 문화가 제품에 담겨 있으면 가격은 그리 중요치 않은 요소가 된다. 물론 여러 사람이 자연스럽게 감지하는 문화의 깊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지역의 오랜 삶이 녹아 있어야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지역의 사람들이 그것을 세련된 방식으로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어야 지속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생산된 지역의 제품들은 대기업의 표준화된 상품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멋으로 소비자를 유혹할 것이다.
지역의 축제에서, 도시의 행사장에서, 혹은 마트나 인터넷에서 지역 작은 기업의 제품을 만나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눈길을 한 번 보내 보면 어떨까? 만약 그 제품이 지역의 맛과 멋을 잘 표현하고 있고, 가격도 그리 나쁘지 않다면 기회를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식탁에 올라온 음식을 한 입 먹었을 때 무언가 모를 그 지역의 느낌을 떠 올릴 수 있고 가족들과 그 지역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은 더 할 것 없이 현명한 소비가 될 것이다. (작성 2020.1.23)
우리가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건 그곳에서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 정착하는 얼마간의 수고를 감당한다면 더 오래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던가, 앞으로 값지게 써 먹을 유용한 지식이나 기술을 얻는다던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더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이 이주의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도시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지역으로 옮겨 가 사는 결정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기에는 단지 도시가 살기 팍팍하다는 것을 넘어선 다른 긍정적인 요인이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한 번 가정해보자. 지역에 살면 도시에 사는 것이나 또는 그 이상의 돈을 벌 수 있고, 집값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며, 개인 시간이 더 많고, 아이들을 더 쉽게 잘 키울 수 있으며, 심지어는 더 근사하고 재밌게 살 수 있다고 그려 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모습을 말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평범한 시골 마을을 떠올려보겠다. 서울 한두 개 구만한 면적의 이 면소재지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기대고 살았던 넓은 들판과 강이 있는 곳이다. 현재는 인구 4,000명가량 살고 있는 면소재지의 중간에는 1~2층의 낮은 상가 거리가 있다. 과거에는 북적이는 시가지였지만 이제는 다소 적막감이 감도는 조용하고 오래된 상점가이다. 옛 중심지가 자연스럽게 인구 밀집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길은 2차선으로 좁고, 도로 양쪽으로는 주차할 공간도 충분하지 못하다.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택가가 있는데 그곳의 골목도 마찬가지로 좁고 구불구불하다.
이곳에 청년들이 터를 잡고 사는 멋진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많을 것이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스마트 농장도 좋고, 주변의 넓은 들판의 수확을 활용한 식품 가공 유통 공장도 좋고, 기존 4,000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서비스도 좋다. 종류가 무엇이건 청년들이 종사할 수 있는 미래가 보이는 일자리가 우선 필요하다. 미관이 유려하고 평면배치도 쾌적하며 냉난방도 효율적인 주택, 아이를 낳고 키우는 좋은 시설,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도 청년들이 원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인구 규모로 도심지 아파트 2~3단지에 해당하는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이곳에 이런 것들을 모두 설치하려면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부지 가격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괜찮은 입지에 첨단 기능을 결합한 농장을 건설하려면 시설비까지 평당 60~80만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한 청년이 딸기 온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600평 규모의 온실을 갖추려면 크게는 5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소출이 좋을 경우를 가정해서 평당 20만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하면 600평에서 나오는 총 매출액은 1억 2천만 원이다. 원가를 뺀 수익률이 60%라고 할 때 청년 농부의 소득은 연 7,200원이다. 청년에게는 큰 돈이지만 가족이 함께 먹고 살기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이 정도 수익이 나는 온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청년 20여 가구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려 100억 원의 초기 투자금이 필요한 것이다.
그밖에 필요한 것들도 개략적인 원가로 비용을 가늠해보자. 식품 유통 가공 공장을 위한 산업단지와 주택단지의 부지 조성에만 평당 40만 원, 집을 짓는 데에는 평당 600만 원, 커뮤니티 센터‧어린이집‧각종 문화시설 건립에는 평당 1,200만 원 정도의 금액이 소요된다. 거기에 응급실이나 산부인과‧소아과 같이 꼭 필요한 병원을 운영하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는 인건비와 제반 비용 등 시설당 연 수억 원의 비용이 우습게 들어간다.
이런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4,000명의 면 인구가 6,000명으로 증가한다고 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이 개인이 주택을 짓는 비용을 빼고도 700억 원 정도라고 해 보자. 단순 계산으로 한 명의 인구를 유치하는 비용은 3,500만 원인 셈이다. 공공이 3,500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여 한 사람을 지역으로 맞아들였을 때에 연 수백만 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면 이는 충분히 의미 있는 투자일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러한 가치가 발생하기 전에 청년들이 이 지역을 떠나 버리거나 애초에 오지 않는다면 귀중한 공공의 자원은 헛된 노력에 낭비되는 셈이다. 투자금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더 큰 기대는 그렇게 이주한 사람들이 마을을 한층 발전시켜서 새로운 문화까지 만들어내는 것이다. 단지 도시에 있는 일자리, 주택, 센터, 병원 등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서서 도시가 갖지 못한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미래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지역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공공의 투자 재원은 그 어느 분야에서 보다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청년들이 꿈을 좇아 이주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열거한 요소들 중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수하거나 모든 요소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어야 한다. 만약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명확하다면 다른 조건이 아주 열악해도 청년들은 과감한 이주를 택할 것이다. 또는 다른 조건들이 고만고만하게 갖춰져 있어도 그 중 하나의 요소가 크게 열악하다면 청년들은 이주를 주저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을 살리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기본 환경을 고르게 갖춰나가는 한편 특별히 빼어난 장점을 찾아내 키워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갑자기 우리 지역에서 금이나 석유가 나오게 해 기대 소득을 크게 밀어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해답은 누구나 아는 기본에 있을 것이다. 정말 좋은 기업이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게 하고, 그 어디에도 없는 문화가 탄생해 지역 곳곳에서 꽃 피게 하는 일이다. (작성 2020.3.8)
지역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년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수적이다. 청년들은 지역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기도 하고, 농축수산업에 종사하기도 하고,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자리 중 하나는 바로 청년들이 지역에서 이끌어 가는 자영업이다.
지역에서 청년들이 도전하는 자영업 중에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농수산물 가공업, 요식업, 관광업이다. 요즈음에는 솜씨 좋은 청년들이 만든 분위기 좋은 독특한 카페나 게스트하우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의 오래된 건물, 빈집, 한옥들을 리모델링해서 문화적 풍취를 가미하면서 청년의 기발한 감성을 입힌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는 그 자체로 큰 화제 거리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일상화 되면서 사람들은 근사한 곳이라면 구석구석에 있는 장소까지 기가 막히게 알고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상수동, 가로수길, 경리단길처럼 그간 교통이 불편했던 도심지 외진 곳에도 속속 감성적인 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지역에서도 제주도, 전주 등을 시작으로 해서 청년들이 선보이는 명소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고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한다는 전제 하에 이런 흐름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우리 지역은 오랜 세월 저마다 개성 있는 색깔을 키워왔기 때문에 그 진가를 알아채고 발현하는 청년들이 곳곳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역시 자영업이라는 것은 냉혹한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의 경우 입지의 불리함에서 오는 경제성과 경쟁력 약화라는 요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약간 외떨어진 곳에 멋진 공간을 마련해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청년들을 생각해 보자. 어딘가를 가기 위해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부러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와야만 하는 이곳에 하루 평균 100명이 찾아온다면 이 청년들은 매우 성공한 장사를 하는 것이다. 도심지 목 좋은 곳에 줄을 서서 주문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가 하루 700여 명, 그럭저럭 장사가 잘되는 곳이 하루 300여 명의 손님을 응대하는 것을 감안할 때, 외진 곳에서 이 정도면 결코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카페에 하루 100명이 와서 인당 10,000원씩 소비를 한다면 한 달 매출은 3,000만 원이다. 연간 매출로는 3억 6천만 원이다. 물론 이것은 매일매일 휴일도 없이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금액이다. 실제로는 쉬는 날도 있고, 겨울철에는 매상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연간 매출은 이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도심지에서 월 매출 3,000만 원을 버는 자영업자는 사실 생활하기 쉽지 않다. 40%에 달하는 재료비, 일정액의 세금 공제를 받는다 해도 매출액의 5~6%에 달하는 부가세, 초기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비, 이자, 관리비, 수도전기통신 등 각종 공과금, 주방과 접객 직원 등 2~3인의 인건비, 매장 임차료, 소모품비를 빼고 나면 사장님이 가져가는 돈은 매출액의 3.5% 정도인 100만 원밖에 안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임차료가 도시보다 적게 나가니 거기에서 월 200만 원가량을 절약한다고 하면 사장님이 가져가는 돈은 300만 원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만약 젊은 청년 한 명이 당장 이 정도를 벌어들인다고 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을 꾸린다면 급여로서 부족한 돈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젊었을 때는 이 금액이 그다지 적지 않은 수입이라 해도 10년, 20년 일해도 월급이 계속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래도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약 여러 명의 청년이 함께 지역에 정착해 동업을 한다고 하면 직원 고용을 위한 인건비는 절약되지만 한 명이 가져가는 금액은 여기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외떨어진 지역에 있다는 특성상 유동인구와 상품의 판매가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청년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오랜 시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료비, 세금, 관리비, 공과금, 인건비, 소모품비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니 줄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절약할 수 있는 것은 초기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비와 금융비용, 그리고 임차료이다. 이 부분에서는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투자 자체를 공공에서 해 주고 이를 저렴한 임대료로 청년에게 빌려 준다면 그 비용 항목 자체를 거의 없앨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추가적으로 청년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월 200만 원가량 되어 사업의 이득을 월 500만 원 이상으로 올려 줄 수가 있게 된다.
청년을 지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청년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이 노력하면 더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멀리 있는 가게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더 늘리고, 한 개의 매장과 한 개의 아이템이 아니라 복수의 매장 및 상품을 개발하고, 손님들이 기꺼이 도심에서보다 비싼 가격을 상품에 지불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기꺼이 방문해서 돈을 쓰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은 청년들의 솜씨이고, 청년이 여러 매장들을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공공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공공에서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세금으로 시설을 건립한다는 것인데 왜 낯선 청년들을 위해 그 세금을 써야 하는지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들은 청년이 와서 지역의 활기가 되살아나고, 지역 경제가 덩달아 좋아지고, 그 청년이 너무 큰 사익을 취하지 않으면서 주민들과 이득을 공유하고, 어느 정도 주민에게 도움 되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그 세금의 사용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청년 자영업을 바라볼 때에 간과해서는 안 될 또 다른 사실은 사업은 당연히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도시에 비해 태생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역의 약점을 벌충해주기 위해 공공이 지원해 주지만 이런 조력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의 사업은 잘 될 수도, 잘 못될 수도 있다. 옆에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청년 스스로도 자신의 젊음을 걸고 이런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들이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좌절했을 때도 원한다면 재기의 기회를 주고,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면 그것을 인정해 주고, 공공이 투자한 자산을 활용한 사업을 계속할 청년이 불가피하게 자리를 떠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적임자를 찾아내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지역의 청년 자영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가고 있다. 남다른 감각과 열정을 갖춘 청년들이 지역으로 모여 들고, 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할 때 우리의 지역 사회와 국가는 더 큰 활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작성 2020.8.8)
사람은 매일 집에서만 있을 수는 없고 어딘가 나들이할 장소를 필요로 한다. 요즈음에는 카페나 실내 놀이터 같이 일정한 요금을 내고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꽤 많이 있다. 그러나 외출할 때마다 수시로 돈을 쓴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있는 마음 편한 공간을 찾기 마련이다. 이 때 공공에서 운영하는 무료 커뮤니티 공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려 편안하게 시간을 즐기다 갈 수 있는 인기 있는 방문 장소이다.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도서관, 체육관, 문화센터, 강연장 같은 곳들이 떠오른다.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연습실과 여럿이 함께 쓰는 작업실, 공유 사무실, 공공 회의실도 그 일종이다. 아이들을 맡아주는 돌봄교실, 장난감 대여점, 유아 놀이방도 마찬가지다. 마을마다 있는 노인회관, 마을회관, 부녀회관들도 전통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는 전시관, 공연장, 영화관도 문화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공공 장소들이다. 이 외에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훌륭한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시설들은 대부분 세금으로 지어지고, 개소당 적정 인구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수영장은 인구 12만 명당 한 개, 체육관은 5만 명당 1개, 큰 도서관은 5만 명당 1개, 작은 도서관은 1만 명당 1개씩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기준들은 일견 합리적인 것 같으나 문제는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 조건에 따라 시설이 만들어지면 인구가 밀집한 도시의 주민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체육관, 도서관, 문화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보다 넒은 면적에 수 만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들은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먼 거리에 도서관, 체육관을 고작 한두 개 정도씩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지역의 커뮤니티 시설을 구축할 때에는 도시와는 다른 기준과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립 기준에 있어서 인구 외에도 수혜 면적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시설비와 운영비의 일정 부분을 외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간과 프로그램을 더 다채롭게 설계해야 하며, 먼 곳의 사람들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연계 교통편을 거의 무료 수준으로 제공해 주는 방안까지 생각해야 한다. 여력이 있어서 도시의 커뮤니티 공간이 갖추기 어려운 자연 친화적이고 지역 특징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면 더 돋보이는 시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서술한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예를 한번 들어보자. 인구 5만 명이 살고 있는 한 군에 작은 커뮤니티 센터를 짓는다고 생각해보자. 연면적 600제곱미터(180평)의 이층짜리 건물의 일층에는 카페, 강연장을 만든다고 가정하겠다. 이층에는 아이들 돌봄공간과 장난감 놀이터를 설치한다고 해보자. 이렇게 만들면 이 커뮤니티 공간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서로 놀리면서 맘이 맞으면 카페에 들려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이용될 것이다. 가끔씩은 강연장에서 주민들에게 유익한 강좌도 열릴 것이다. 이 군에서 일 년에 아이가 500명가량 태어난다고 해보자. 이 공간을 2세부터 8세까지의 부모님들과 아이가 이용한다고 하면 잠재적인 고객수는 3,500명이다. 이들 중 30%가 한 달에 세 번씩 이곳을 찾는다고 하면 하루 평균 어린이 이용객은 100명, 부모님과 같이 오면 전체 이용객은 대략 300~400명가량 된다. 이 경우 연간 방문객의 총 수는 12만 명 정도 될 것이다. 이런 규모의 공간을 만드려면 부지비 외에도 평당 1,200만원의 건립비가 소요되어 22억원가량 든다. 전기요금, 수도요금, 통신요금, 청소비, 경비요금, 수선비, 난방비 등 관리비를 평당 월 3만원 정도로 적게 잡아도 운영비는 월 540만원쯤 된다. 연간으로 하면 약 6,500만 원 운영비가 필요하다. 22억 원을 3%의 이율로 빌린다면 1년 이자는 6,600만 원, 운영비와 함께 계산하면 연간 1억 3천만 원이 소요된다. 만약 이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을 1~2명 채용한다면 연 2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인구 5만 명의 사람들이 일 년에 각각 4,000원의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도서관, 체육관, 전시실, 공연장 등 이 군에 필요한 시설들을 종류별로 다 갖추고 운영비를 감당한다고 하면 한 사람당 일 년에 몇 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5만 명 중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라고 하면 과세자 일인당 지불 비용은 연간 10만 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서울보다 면적이 넓은 이 지역에는 커뮤니티 센터를 종류별로 단 하나씩 밖에 운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서울이 25개 구로 나눠진 것처럼 권역을 구분해 커뮤니티 시설을 만든다고 하면 일인당 지불 비용은 연간 수백만 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무리 커뮤니티 시설이 필요하다고 해도 상황이 이러하다면 지역에서 느끼는 부담은 상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요구된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자발적 기부금 등 외부의 재원을 끌어올 수 있는 더욱 다양한 방법들을 구상해야 하고, 빅데이터를 이용해 이용 패턴을 분석한 후 시설에 가장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동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어야 한다. 시설 복합화 등을 통해 건립비와 운영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없고 운영비가 많이 든다고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 구축이 어렵다고 단정하는 것은 작은 것을 쫓다가 큰 것을 놓치는 일이다.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은 오히려 민간 자본이 투자되는 공간이 부족한 곳에서 더욱 큰 효용을 발휘하는 가장 효과적인 소통과 교류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틀을 깨는 창의적인 발상과 새로운 시도일 것이다. (작성 2020.2.22)
우리나라에는 탐험할 곳이 무궁무진하다. 한국을 탐험(Exploring Korea) 한다고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방문객들보다 훨씬 더 많은 행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여러 곳을 가볼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고, 많은 뒷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땅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몇몇 도시를 벗어나 깊은 골짜기, 외떨어진 섬 구석구석에 들어가면 무수한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수많은 사연들과 정겨운 자연들, 그곳에서 오래 뿌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긴 세월 동안 우리가 이 땅 곳곳에 만들어온 소중한 공동체들은 이제 조금씩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단지 몇몇 마을이 흥망성쇠를 겪는 국지적인 일은 아니다. 이 현상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하나씩 마을이 없어지고,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고장들이 사라진다면 그 안에 길게 이어온 이야기들도 다 같이 흩어져 버릴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대한민국은 서울과 몇몇 큰 도시만이 살아있는 기형적인 공간으로 변모할 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은 얼마나 심각할까? 우선 통계를 통해 그 현상을 가늠해 보기로 하자. 유명한 지표로 '소멸위험지역'이라는 것이 있다. '소멸'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수치는 2014년 일본의 '지방소멸: 도쿄 일극중심이 초래하는 인구급감'이라는 책에서 마스다 히로야가 불러일으킨 논쟁적인 지수이다. 단정적인 표현에 비해 이 값의 산출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떤 지역의 가임여성(20~39세) 인구를 노인인구(65세 이상)로 나눈 숫자가 0.5 이하이면 그 곳을 '소멸' 지역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 안에는 앞으로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른 인구 유입 가능성, 예상치 못한 인구구조 개선, 현재의 구도 속에서의 새로운 생존 방식 발견 같은 희망적인 변수가 들어가 있지 않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지역이 인구 급변의 위기를 겪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데에는 이 지표가 매우 유용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시군구 226개의 절반 가까운 곳이 소멸 위험지역이다.
2019년 2월에는 전통적으로 서울에서 경상도로 향하는 주요 길목으로서 번성했던 상주시의 인구가 10만 명 아래로 내려가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2019년 기준 10만 명을 조금 넘는 인구를 보이는 경상북도 영천, 영주, 경상남도 밀양, 충청남도 보령, 공주도 조만간 10만 명이라는 숫자 아래로 인구가 내려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양의 인구는 2만 명 이하인 17,000명대를 기록했다. 전라북도 김제, 강원도 태백은 인구가 최정점이던 때와 비교해서 각각 61%, 59%나 감소해 활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런 소중한 지역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핵심은 젊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 뿌리 내리고 싶어 하고 실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도시에 비해 대형 쇼핑몰, 대중 교통망, 큰 병원이 부족한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귀한 삶을 영위할 매력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펼쳐가는 흥미로운 도전들 속에 있을 것이다. (작성 2019.12.6)